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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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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11-20 23:02:06 수정 : 2025-11-20 23:02:04
유지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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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니라 한국인인 당신이 발표를 해야 했네요.”

지난 5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평의회에서 만난 다나카 아키히코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국제정치 분야 석학인 그는 2025년 세계민주주의포럼 패널로 나와 한국을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소개했다. 1년 전 12·3 비상계엄 사태를 국회와 국민이 막아냈고, 탄핵과 선거를 통해 평화롭게 새 정부가 꾸려졌다는 것이다.

유지혜 산업부 기자

발표 이후 그와 만나 “한국을 언급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국회에서 계엄 이후 일련의 정치적 과정들을 취재했다고 하니 “오히려 당신이 패널이 됐어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다. 정치부 기자 시절 계엄 현장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기는 했지만, 사실 민주주의의 회복을 경험한 우리 국민 모두가 전 세계인 앞에서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패널이라면 한국을 민주주의의 회복 사례로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었을까. 최근 정치 상황을 보면 ‘현 정부가 과연 민주적인가’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자유롭고 공정한 다당제 선거와 참정권, 표현·결사의 자유뿐 아니라 삼권분립, 시민의 자유 보호, 법에 따른 평등이 보장돼야 한다.

그 기준을 대보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우려스럽다. 내란전담재판부 신설, 4심제 도입, 판·검사 처벌을 위한 ‘법 왜곡죄’ 추진 등은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과정에서 이의를 제기한 검사들을 파면하고 강등시키겠다는 것 역시 준사법기관에 대한 압박이다. 여권을 견제할 장치도 사실상 작동하기 어렵다. 범여권 의석이 190석에 달하면서 국회는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모든 법안과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야당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이재명 독재를 저지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나름 여권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해도 외면당하며 소수 야당의 유일한 수단인 여론전에서도 번번이 밀리고 있다. 계엄 이후 1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윤석열 어게인’의 늪에서 말끔하게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국회에서 만난 한 여당 의원은 “야당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못 하니 사실상 우리한테 야당은 언론”이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태판 린드베리 V-Dem 소장은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바뀌는 국가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1930년대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한 사람의 등장으로 불과 몇 달 만에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권위주의’ 체제로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도자 한 사람이 민주주의의 방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다나카 이사장이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을 설명하며 가장 강조한 요소는 바로 ‘언론의 자유’와 ‘독립된 사법부’였다. 그는 “제대로 기능하는 저널리즘과 사법부가 있다면 민주주의 제도가 흔들리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지금의 한국에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할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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