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서 ‘운(luck)’은 설명력이 강한 개념 중 하나이다. 전장의 우연과 마찰, 예측 불가능한 환경 변수는 종종 전투와 전쟁의 향방을 바꾼다. 그래서 지장·용장·덕장을 넘어 운장이 최종 승자가 된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전쟁을 움직인 특정 인물들의 행적을 들여다보면, 그들에게 작용한 운이 과연 우연히 주어진 산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태평양전쟁에서 미 육군과 해군을 대표한 맥아더와 킹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태평양전쟁 초기 ‘선 독일(후 일본)’이라는 연합군의 대전략 원칙 아래에서,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에 비해 열세에 놓인 미국에 합리적인 선택은 가용 자산을 보존한 채 방어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킹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항공모함을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지금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수단으로 인식하며 도쿄 폭격을 승인하고 밀어붙였다. 미 항공모함이 일본 본토 인근까지 접근해 실시한 두리틀 공습은 실제로 일본에 의미 있는 피해는 입히지 못했다. 그럼에도 수도 도쿄가 폭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일본 지휘부에 심리적 충격을 주었고, 본토 방위에 대한 조급함을 불러왔다. 이 조급함이 결국 미드웨이 해전이라는 결정적 국면으로 이어지며, 전략적 차원에서 미군에게 운으로 작용했다.
맥아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기니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진 군사작전은 강력한 지점을 회피하고 방어가 취약한 지점을 신속히 점령하며 도약하는 방식이었기에, 뒤에 강한 적을 남겨두는 도박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도박이라기보다는 계산된 선택이었다. 맥아더는 일본군이 병력을 효과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지휘 체계의 경직성과 소극적 판단으로 인해 합리적 대응에 실패할 가능성을 전제로 위험을 감수했다. 그 결과 일본군의 대응 실패가 반복되었고, 미군은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맥아더와 킹의 사례가 보여주는 결론은 분명하다.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 운은 따라오지 않으며, 선택과 노력이 축적될 때 비로소 운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무모하게 운에 기대어 승리를 얻은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숙고한 결단과 위험 감수를 통해, 운이 자신들의 편에서 작동하도록 노력한 인물들이었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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