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책을 쓴 후 그에 대한 권리를 갖지 못하고 이득을 보지 못한다면, 책(의 내용) 때문에 저자를 처벌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서적 인쇄업자(길드)가 독점적 출판권을 갖고 있던 1704년 소설가 대니얼 디포가 에세이에 쓴 말이다. 디포는 정치 상황을 풍자한 책 때문에 사흘간 칼을 쓴 채 조리돌림을 당한 뒤 저작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실제 ‘창작물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에게 있다’는 저작권 개념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저작자들의 희생을 딛고 확립됐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중세 저작자들은 저작물을 재산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앤 여왕이 재위 중이던 1710년 이른바 ‘앤 여왕법’이 제정된 뒤에야 인쇄업자가 아닌 저작자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근대적 저작권이 탄생했다. 다만 이때는 저작권의 존속 기간을 28년으로 제한됐고, 이미 출판된 책은 출판일부터 21년만 권리가 인정됐다.
미국 인공지능(AI) 빅테크 앤스로픽이 2024년 수천만 달러를 들여 수백만 권의 책을 사들여 스캔하는 방식으로 AI를 학습시킨 ‘파나마 프로젝트’가 최근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앤스로픽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책을 무단으로 스캔해 AI 훈련에 활용했다가 피소됐고, 저작자들과 15억 달러(약 2조원)에 합의했다. 현재 앤스로픽의 보상 대상 도서는 48만여 건으로, 김애란·한강·황석영 등 한국 작가의 영문판 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을 둘러싸고 저작자는 물론 출판사 및 미디어 진영과 AI 빅테크 간 갈등이 점점 고조하고 있다. 지식 탈취 및 저작권 침해 등의 혐의로 소송 중인 AI 빅테크는 앤스로픽뿐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뉴욕타임스와 오픈AI 간, 일본에선 아사히신문·니혼게이자이신문 등과 퍼플렉시티 간, 국내에선 지상파 3사와 네이버 간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오늘의 책을 먹고 자란 기술이 내일의 책이 나올 길을 막는다면 그 발전은 과연 오래 이어질 수 있겠느냐”(한국출판인회의)라는 물음 앞에 AI가 서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저작자에게 제대로 보상도 하지 않고, 책이 품고 있는 방대한 지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AI 빅테크 행태를 보고 디포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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