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의 엄마이자 대한민국 연예계 ‘다산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김지선. 대중에게 비친 그녀의 모습은 넷째 출산 100일 만에 복근을 되찾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화신이자 월 2억원 수익을 올리는 방송인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그녀의 지난 시간은 자신을 파괴할 만큼 쉴 틈 없는 질주였다. 어느 날 마주한 참혹한 사고의 잔해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죽음의 문턱을 보며 멈추지 못했던 강박의 끝을 마주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궤도 위에서
14년이라는 긴 무명 시절, 통장 잔고가 단 3000원에 불과했던 가수가 있다. 지금은 업계 최상위권인 회당 행사비 3800만원을 받는 스타가 되었지만, 그의 삶을 지탱하는 본질은 데뷔 시절과 달라지지 않았다. 대중이 영탁의 성공을 단순히 돈의 액수로만 보지 않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가 매일 가계부를 쓰며 수입과 지출을 조율하던 무명 시절의 습관은 자산 분산과 리스크 관리라는 굳건한 태도로 이어졌다. 왜 그는 성공한 이후에도 절제를 택했을까
더불어민주당 8·17 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이 초접전으로 흐르는 가운데 순회경선 1·2주차를 거치며 세 후보도 자신의 강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재편했다. 세 후보 모두 ‘개혁’을 주요 표현으로 내세웠지만 김민석 후보는 초반 계파 공세를 줄이고 ‘성장’을 전면에 올렸다. 정청래 후보는 ‘의리’를 부각하며 김 후보의 과거 탈당 등을 겨냥한 공세를 이어갔다. 송영길 후보는 ‘연임’ 언급을 줄이고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전면에 세우
노역 열외 老죄수… 수형자 절반 넘게 작업 못해 [탐사기획-노인과 교도소]2동 거실 복도에는 창문마다 난(蘭)이 두세 개씩 놓여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난을 환하게 비췄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화분은 신발장 위에 올려뒀다. 노인들이 식물 돌보는 것을 좋아해 실내에서 키우기 쉬운 난을 골랐다고 했다. 창문 밑에는 안전바가 설치됐고, 복도 한가운데 탁자 위에는 혈압 측정기가 놓였다. 그 옆에는 휠체어가 접힌 채로 세워
백발의 그는 왜 감옥을 전전하나 [탐사기획-노인과 교도소]조문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백발이 무성한 남자가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2019년 10월7일 오전 7시41분, 6호실을 지키던 유가족은 아직 단잠에 빠져 있었다. 170㎝가 채 안 되고 비쩍 마른, 왜소한 체격의 남자는 부의함 서랍에서 상주 몰래 봉투 20장을 챙겼다. 부의금이 담기지 않은 빈 봉투라는 사실은 한참 뒤 깨달았다. 장례
[설왕설래] 전 세계 극한 가뭄 ‘헝거 스톤’(Hunger Stone)은 ‘배고픔의 돌’, ‘슬픔의 돌’, ‘기근석’으로 불린다. 유럽의 라인강, 다뉴브강, 엘베강, 모젤강 곳곳에 헝거 스톤 수십 개가 있다. 평상시에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독일과 체코 사이를 흐르는 엘베강에 1616년에 새겨진 ‘내가 보이면 울어라’(Wenn du mich seehst, dann weine)라는 문
[주춘렬 칼럼] 위험천만한 부자증세 “네 몫은 하나고 내 몫은 열아홉이야. … 차를 운전하면 통행료를, 자리에 앉으면 좌석료를, 춥다면 난방비를, 산책한다면 발에도 세금을 걷을 거야.” 60년 전 전설적 록밴드 비틀스가 당시 영국 사회에 만연했던 징벌적 세금 광기를 풍자한 노래 ‘택스맨’에 나오는 가사다. 집권 노동당은 부자증세와 복지 포퓰리즘에 기대 소득세를 무려 95%나 물렸다고 하니 과
[기자가만난세상] 요즘 경마장 가보셨나요 “경마는 스포츠인가요? 도박인가요?” 최근 가까운 지인 30명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결과는 놀랄 만큼 팽팽했다. 스포츠라고 답한 사람은 16명, 도박이라고 답한 사람은 14명이었다. 30명이라는 작은 표본이지만, 경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히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경마가 유독 이런 질문을 피하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김태웅의역사산책] 계용묵의 약자 연민과 생활소설 1904년 9월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소설가 계용묵이 1961년 8월 9일 장암으로 별세했다. 아무개 일간지는 그의 부음을 보도하면서 1925년 단편소설 ‘상환(相換)’으로 데뷔한 뒤 이른바 경향파 작품을 수 편 발표하였다가 1935년 ‘백치 아다다’ 발표를 계기로 순예술파로 전향했음을 덧붙였다. 이러한 소개는 그가 데뷔 초기에는 리얼리즘 소설을 통해 약자